영업비밀의 비공지성
1. 비공지성의 개념 및 정의
비공지성은 영업비밀로 인정받기 위한 핵심 요건 중 하나입니다. 부정경쟁방지법에 따르면 “영업비밀”이란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아니하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서, 비밀로 관리된 생산방법, 판매방법, 그 밖에 영업활동에 유용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를 말합니다. 이 중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아니한” 상태가 바로 비공지성입니다.
비공지성은 영업비밀의 특징 중 가장 중요한 ‘경업 재산’으로서의 특성과 관련이 깊습니다. 일단 공공연히 알려진 정보는 비밀로서 가치를 잃게 되며, 법적 보호의 대상이 되기 어렵습니다. 이는 공개된 지식이 사회에 유통되면 법적 보호 대상 여부를 판별하기 어렵고, 정보 유통 및 이용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재산적 정보로서 보호받을 이익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정보여야 합니다. 인천 송도에서 기업 법무를 담당하는 변호사로서, 많은 기업들이 영업비밀 보호에서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바로 이 비공지성 요건임을 실무에서 경험하고 있습니다.
2.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아니한’의 의미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아니하고”란 그 정보가 간행물 등의 매체에 실리는 등 불특정다수인에게 알려져 있지 않아 보유자를 통하지 아니하고는 그 정보를 통상 입수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영업비밀에서 ‘비밀’이라는 용어는 이미 대상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것이라는 개념을 포함하지만, 비밀이 공개된다는 것이 관계자 전부가 현실적으로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 비밀의 대상이 해당 보유자의 관리가 가능한 범위 밖에서 입수 가능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즉, 보유자 이외의 사람이 해당 정보를 알고 있고 복수의 사람들이 해당 정보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사람들에게 비밀유지의무가 있다면 보유자의 관리가 가능한 범위 내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비공지의 상태에 있는 것이 됩니다.
반대로 오직 한 사람이라도 불특정인인 외부 사람에게 알려진 이상, 외부로 유출되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이미 보호할 가치가 없게 됩니다.
영업비밀은 공공연히 알려진 것이 아니어야 하지만 반드시 절대적인 비밀성을 요하는 것은 아니며, 비밀유지의무가 있는 자에게 제한적으로 알려져 있고 그 제한된 상태가 유지되고 있는 것과 같은 상대적 비밀성이 인정되면 비공지성 요건을 충족합니다.
이는 특허법상 신규성과 비교될 수 있는데, 특허법에서는 출원 전에 간행물 등에 공지되면 객관적 사실만으로 절대적 비밀성을 상실하지만, 영업비밀의 비공지성은 공개된 사실이 있더라도 비밀 관리가 되어 있다면 비밀성이 상실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상대적입니다.
3. 정보의 경제적 가치와 비공지성
영업비밀이 되기 위한 요건 중 하나는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질’ 것입니다. 이는 정보 보유자가 그 정보의 사용을 통해 경쟁자에 대하여 경쟁상의 이익을 얻을 수 있거나 또는 그 정보의 취득이나 개발을 위해 상당한 비용이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정보가 경쟁자에 대해 ‘경쟁상의 우위’ 또는 ‘경쟁상의 이익’을 가질 수 없다면 영업비밀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비공지성은 이러한 경제적 가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정보가 공공연히 알려진 경우에는 비밀 관리자는 다른 경업자에 대해 우위에 있는 지위를 잃게 되고, 이때는 보호할 재산적 가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비공지성이 요구됩니다. 경제적 유용성에 대한 판단은 종종 비공지성의 판단 결과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4. 비공지성 판단의 기준 및 쟁점
비밀관리성 요건에 대한 법리가 축적되고 완화되는 추세인 반면, 영업비밀의 성립요건 중 비공지성 판단의 기준은 여전히 명확하게 확립되지 않은 측면이 있습니다.
영업비밀로 보호받고자 하는 정보는 종종 복수의 정보가 조합된 형태로 이루어지며, 이러한 조합된 정보와 이미 공지된 정보 간의 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중요한 쟁점이 됩니다. 공지된 정보를 조합하여 이루어진 경우, 단순한 정보의 나열인지, 아니면 기존 공지 정보를 결합함으로써 새로운 기술적·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조합 정보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비공지성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다음 기준 중 하나를 충족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 정보를 조합하는 것이 해당 업계 종사자에게 쉽지 않은 경우
- 조합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조합된 정보가 개별 정보의 단순 합계 이상의 기술적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
- 조합 정보의 축적 자체가 설계, 개발 등의 비용 절감에 기여하는 경우
단순히 공지된 정보만을 수집한 정보는 법적 보호가 부여될 필요가 없을 수 있습니다. 공지된 정보와의 식별이 어려운 경우 제3자의 예측 가능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5. 판단 대상자 (일반 공중 vs. 경업자)
우리 판례에서는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아니하다’를 “불특정다수인에게 알려져 있지 않아”라는 표현으로 사용하여, 비공지성 판단 기준의 대상자를 ‘불특정다수인’ 또는 ‘일반공중’을 기준으로 삼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러나 영업비밀 비공지성의 개념과 관련하여, 현실적으로 정보의 속성상 공연히 알려졌음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으며, 단 한 사람이라도 불특정인(외부자)에게 정보가 알려진 경우 비공지성이 상실될 수 있습니다.
미국, 일본 및 독일의 영업비밀 비공지성 판단에 관한 규정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대법원 판례에서 ‘불특정다수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일반공중에게 알려져 있다는 것은 누구라도 해당 정보를 입수할 수 있다는 의미인 반면, 영업비밀의 비공지성 판단에서 공지되었다고 볼 수 있는 범위는 특정되지 않은 일부 사람들, 예를 들어 동종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해당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관련 제품이 시장에 출시되어 비공지성이 쟁점이 될 때, 해당 제품의 기술적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대상자를 일반공중으로 할 것인지, 동종 업계 종사자로 할 것인지에 따라 판단 결과에 큰 차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비공지성의 판단 대상자는 경업자(동종 업계 종사자)로 설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며 이에 대한 기준 명확화가 필요하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6. 역설계(Reverse Engineering)와 비공지성
영업비밀이 체화된 제품이나 설비가 시장에 출시된 상태에서 제3자가 해당 제품을 기술적으로 분석(역설계)하여 정보를 취득할 가능성이 있다면, 이는 영업비밀의 정당한 취득으로 인정될 수 있으며, 그 결과 침해가 부정되거나 나아가 영업비밀의 성립요건을 다투는 논거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역설계는 공지된 물건으로부터 출발하여 그 물건이 개발된 방법을 역으로 분석하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영업비밀보호법이나 판례에 명확한 정의는 없으나, 특허의 보호 대상이 아닌 영업비밀에 대한 분석 행위인 역설계를 위법하다고 볼 근거는 없습니다.
대법원 판례도 경쟁자가 독자 연구개발이나 역설계 같은 합법적 방법으로 동일 기술 정보를 취득하는 것을 금지할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다만, 단순히 역설계가 가능하다는 사실만으로 비공지성이 자동으로 상실되는 것은 아닙니다. 역설계가 가능하더라도 해당 역설계가 특수한 기술 또는 고도의 전문 지식을 필요로 하고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어 누구나 쉽게 정보를 파악할 수 없는 경우에는 “역설계가 가능한(reverse engineerable) 영역”으로 판단합니다.
이 경우 단순히 제품이 시장에 출시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영업비밀이 공개되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반면, 역설계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이 적어 누구라도 간단히 제품을 분석하여 영업비밀을 취득할 수 있는 경우는 “용이하게 입수 가능한(readily ascertainable) 영역”으로 보며, 이러한 경우 제품이 시판됨과 동시에 사실상 영업비밀이 공개된 것으로 간주되어 비공지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즉, 역설계의 난이도(기술 난이도)와 소요 시간 및 비용(경제적 부담) 등이 비공지성 판단의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됩니다.
7. 역설계 가능 제품 유통의 위험성
역설계에 특수한 기술 또는 고도의 전문 지식이 필요하고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어 영업비밀의 비공지성이 충족된다 하더라도, 역설계가 가능한 제품을 시장에 유통시키는 것은 일정한 위험을 수반합니다.
이는 역설계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더라도 누군가가 실제로 역설계를 수행하여 영업비밀을 알아내고 이를 공개해 버리는 순간 비공지성이 상실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술의 발전과 함께 역설계 기술도 점점 발달하고 있어, 과거에는 어려웠던 역설계가 현재는 상대적으로 용이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기업은 제품을 시장에 출시할 때 이러한 위험을 충분히 고려해야 합니다.
8. 계약을 통한 역설계 금지 가능성 (독일 사례)
독일 영업비밀보호법(GeschGehG) 제3조 제1항 b)에서는 관찰, 검사, 분해 또는 시험하는 사람이 적법하게 제품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비밀 유지 의무를 부과하면서 역설계를 금지하는 조항을 설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계약을 통해 역설계를 금지하는 조항을 명확히 포함하는 경우, 이를 위반하여 역설계를 수행하면 단순한 계약 위반이 아니라 영업비밀 침해 행위로도 인정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독일의 규정은 영업비밀 보호를 강화하는 측면에서 참고할 필요가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판례나 입법을 통해 이러한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9. 비밀관리성 요건 완화에 따른 비공지성 판단의 중요성 증대
개정 부정경쟁방지법에서 영업비밀의 인정 요건 중 ‘합리적인 노력에 의하여 비밀로 유지된’을 ‘비밀로 관리된’으로 바꾸면서 비밀관리성 요건이 완화되었습니다.
이는 과거 판례가 비밀관리성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하여 영업비밀로 보호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았던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의도도 있습니다.
비밀관리성에 대한 법리가 축적되고 완화되는 추세 속에서, 영업비밀 성립요건 중 비공지성 판단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비밀관리성 요건이 완화된 만큼, 영업비밀 보호에서 비공지성 요건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10. 비공지성 판단 기준 명확화의 필요성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영업비밀의 비공지성 판단 기준, 특히 판단 대상자를 누구로 볼 것인지, 공지 정보의 조합이나 역설계와 관련된 판단 기준에 대해 여전히 명확하게 확립되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기준 명확화의 필요성이 지적되고 있으며, 주요국의 운영 사례를 참고하여 역설계와 관련한 비공지성 판단 기준(기술 난이도, 소요 비용 및 시간 등)을 우리 실무에 적용 가능하도록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기업 전문 변호사로서, 클라이언트에게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예측 가능한 조언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판단 기준의 명확화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11. 결론
영업비밀의 비공지성은 영업비밀 보호의 핵심 요건으로, 특허법상 신규성보다 완화된 상대적 개념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판단 기준에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 실무에서 어려움이 있습니다.
특히 역설계가 가능한 제품의 비공지성 판단, 조합 정보의 비공지성 인정 기준, 비공지성 판단 대상자 설정 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합니다.
2019년 부정경쟁방지법 개정으로 비밀관리성 요건이 완화됨에 따라 비공지성 판단의 중요성은 더욱 증대될 것으로 예상되며, 기업은 이에 대한 충분한 대비가 필요합니다.
법무법인 케이앤피는 최근 제조업 기업의 영업비밀 보호 관련 소송에서 역설계 가능성을 둘러싼 비공지성 쟁점에 대해 성공적으로 대응한 경험이 있으며, 특히 조합 정보의 비공지성 인정 기준에 대한 전문적인 주장을 통해 유리한 결과를 도출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