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화와 범죄 – 자동화 애플리케이션의 법적 쟁점: 업무방해죄 성립 요건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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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동화 애플리케이션과 법적 쟁점 개요
디지털 환경에서 자동화 애플리케이션은 사용자 편의성을 높이는 중요한 도구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동화 프로그램이 기존 플랫폼의 운영 방식이나 정책에 영향을 미칠 때,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법체계에서 자동화 프로그램의 개발과 사용이 형법상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중요한 법적 쟁점입니다.
자동화 프로그램이 기존 서비스의 약관을 위반한다고 해서 반드시 형사상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민사적 분쟁과 형사적 처벌 간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중요한 법리적 관점입니다. 본 사례는 법무법인 케이앤피가 담당하여 무죄를 받은 사건입니다. 본 글에서는 최근 주목받은 배달 앱 보조 프로그램 ‘매직’ 사건을 중심으로 자동화 애플리케이션의 법적 지위와 업무방해죄 성립 요건에 대해 분석합니다.
2. 배달 앱 보조 프로그램 ‘매직’ 사건의 개요
원본 애플리케이션 ‘생대로’의 특성
‘생대로’는 음식점과 배달기사(라이더) 간의 주문을 중개하는 배달대행 애플리케이션입니다. 이 앱은 식당이 지급하는 배달요금에서 수수료를 제외한 금액을 라이더에게 지급하는 구조로 운영되었습니다. 라이더들은 배달 거리, 식당별 요금 등 다양한 조건에 따라 선호하는 배달 요청이 달랐으며, ‘생대로’ 앱은 자체 업무 규정에 따라 배달 의뢰를 배분하고 있었습니다.
‘생대로’ 측은 약관을 통해 시스템에 부정한 영향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의 무단 사용을 금지하고 있었으나, 라이더들은 보다 효율적인 배달 주문 선택을 위한 수단을 찾고 있었습니다.
보조 애플리케이션 ‘매직’의 기능
피고인들이 개발한 ‘매직’ 프로그램은 ‘생대로’ 앱을 보조하는 자동화 프로그램으로, 다음과 같은 주요 기능을 제공했습니다:
- 금액설정기능: 라이더가 설정한 최소 금액 이상의 주문만 자동 선택
- 거리설정기능: 지정된 배달 거리 범위 내의 주문만 선택
- 우선배차설정기능: 특정 업체나 조건의 주문을 우선적으로 선택
이 프로그램은 라이더의 스마트폰에 설치되어, ‘생대로’ 앱이 표시하는 주문 정보 중 사용자가 미리 설정한 조건에 부합하는 주문이 나타나면 자동으로 해당 주문을 클릭하는 방식으로 작동했습니다.
검찰의 공소 사실
검찰은 피고인들이 ‘매직’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유포함으로써 ‘생대로’ 앱이 공평한 배분을 위해 설정해 둔 조건 설정 제한을 무력화했다고 판단했습니다. 검찰의 주장에 따르면, ‘매직’의 필터 기능 및 자동 클릭 기능이 ‘생대로’ 정보처리장치의 정상적인 작동을 방해하여, 공평하게 배달 의뢰를 배분하려는 피해자 회사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검찰은 형법 제314조 제2항에 규정된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죄로 피고인들을 기소했습니다.
3.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죄의 법적 요건
형법 제314조 제2항의 구성요건
형법 제314조 제2항은 “컴퓨터 등 정보처리장치 또는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을 손괴하거나 정보처리장치에 허위의 정보 또는 부정한 명령을 입력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정보처리에 장애를 발생하게 하여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조항이 적용되기 위한 핵심적인 구성요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정보처리장치에 대한 손괴 행위 또는 허위 정보/부정 명령의 입력 또는 기타 방법으로 정보처리 장애 유발
- 그로 인한 정보처리 장애의 발생
- 결과적으로 사람의 업무 방해
판례를 통해 본 ‘장애’ 요건의 해석
대법원은 여러 판례를 통해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죄에서 ‘장애’의 의미를 해석해왔습니다. 특히 대법원 2009. 4. 9. 선고 2008도11978 판결에서는 정보처리장치에 ‘장애’가 발생했다고 인정되기 위해서는 가해행위의 결과로 정보처리장치가 그 사용목적에 부합하는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사용목적과 다른 기능을 하는 등 정보처리에 장애가 현실적으로 발생했어야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즉, 단순히 운영자의 의도나 정책에 반하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이 사용된다는 사실만으로는 형법상 처벌 대상이 되는 ‘장애’가 발생했다고 볼 수 없으며, 정보처리장치의 본질적 기능 수행에 실질적인 지장이 있어야 합니다.
4. 법원의 판단 근거와 해석
‘매직’ 프로그램 개발자들에 대한 1심과 항소심 모두에서 법원은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판단의 주요 근거로서 법무법인 케이앤피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정보처리 장애 발생의 부재
법원은 ‘매직’ 프로그램이 ‘생대로’ 앱의 서버에 과부하를 유발하거나, 앱 자체의 소스 코드를 변경하거나, 메모리상의 데이터를 위변조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보았습니다. ‘매직’은 단지 사용자의 스마트폰에 이미 전송된 주문 정보를 읽어 사용자가 설정한 조건에 따라 ‘클릭’ 행위를 자동화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따라서 ‘매직’ 프로그램의 사용으로 인해 ‘생대로’ 앱이나 그 서버가 본래의 배달 중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는 물리적 또는 기능적 장애가 현실적으로 발생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생대로’ 앱은 여전히 주문을 수신하고 라이더에게 목록을 제공하는 핵심 기능을 유지했습니다.
2. ‘공평한 배분’ 목적의 불분명 및 침해 불인정
법원은 ‘생대로’ 앱이 ‘무작위 주문 목록’만을 노출하거나, 라이더의 선호 조건과 관계없이 ‘공평하게 의뢰를 배분’하는 것을 주된 사용목적으로 설정하고 운영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피해자 측은 이러한 ‘공평 배분’ 기능이 실제로 어떻게 구현되어 운영되고 있었는지, 그리고 ‘매직’ 프로그램이 이를 어떻게 본질적으로 침해했는지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입증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생대로’ 앱 자체에도 ‘배차거리 설정 기능’, ‘지역 설정 기능’ 등이 존재하여 라이더가 어느 정도 자신의 조건에 맞는 주문을 선별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매직’ 프로그램이 라이더에게 조건 설정의 편의를 제공한 것이 ‘생대로’ 앱의 사용목적에 부합하는 기능을 저해했거나 사용목적과 다른 기능을 수행하게 만들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3. 접근성 서비스 기반 자동화의 성격
법원은 ‘매직’ 프로그램이 구글(Google) 등이 제공하는 ‘접근성 서비스’를 기반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러한 접근성 서비스는 사용자가 기기와 더 쉽게 상호작용하도록 돕기 위해 제공되는 합법적인 도구입니다.
‘매직’은 ‘생대로’ 앱이 화면에 표시하는 정보를 사용자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클릭하는 과정을 자동화한 것에 가깝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생대로’ 앱이 제공하지 않는 정보를 새롭게 생성하거나 접근 권한을 넘어서는 행위를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기존 앱에 없는 사용자 편의 기능을 추가적으로 제공했다는 사실만으로, 그리고 그것이 기존 앱 운영자의 의도와 다소 배치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기존 앱의 정보처리에 형법상 처벌 대상이 되는 ‘장애’가 발생했다고 인정하는 것은 가벌성의 범위를 지나치게 확장할 위험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4. 허위 정보 입력 또는 부정한 명령으로 보기 어려움
법원은 ‘매직’ 프로그램이 ‘생대로’ 앱에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허위의 정보’를 입력하거나, 정보처리장치 운영 본래의 목적과 상이한 ‘부정한 명령’을 입력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프로그램은 단순히 화면에 표시된 정보를 바탕으로 사용자가 설정한 기준에 따라 ‘선택(클릭)’이라는 입력을 수행했을 뿐, 시스템을 기망하거나 오작동을 유도하는 정보를 주입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5. 유사 사례 및 법적 선례 검토
‘매직’ 사건과 유사한 법적 선례로는 인터넷 매크로 프로그램이나 자동화 도구와 관련된 다양한 판례들이 있습니다. 법원은 이러한 사건들에서 일관되게 정보처리 장애의 현실적 발생 여부를 중심으로 업무방해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해왔습니다.
특히 대법원은 웹사이트의 서버에 과부하를 일으키거나 정상적인 운영을 방해하는 수준의 DDoS 공격과 같은 행위는 업무방해죄가 성립할 수 있으나, 단순히 웹사이트의 UI를 통해 자동화된 방식으로 정보를 수집하거나 작업을 수행하는 행위만으로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는 입장을 유지해왔습니다.
6. 자동화 프로그램 개발자의 법적 책임 범위
‘매직’ 사건은 자동화 프로그램 개발자의 법적 책임 범위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개발자가 형사적 책임을 지게 되는 경우는 다음과 같은 상황에 한정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개발한 프로그램이 대상 시스템의 보안을 우회하거나 무력화하는 경우
- 대상 시스템에 물리적 손상이나 기능적 장애를 직접적으로 야기하는 경우
- 허위 정보를 입력하거나 시스템을 기망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경우
- 불법적인 목적(개인정보 탈취, 저작권 침해 등)을 위해 설계된 경우
반면, 단순히 사용자의 편의를 위해 기존 서비스의 UI를 통해 자동화된 작업을 수행하는 프로그램은, 그것이 서비스 제공자의 사업 모델이나 정책에 반하더라도,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기 어렵습니다. 이는 민사적 분쟁(계약 위반, 불법행위 등)과 형사적 처벌 간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중요한 법리입니다.
7. 기업의 약관 제한과 법적 강제력의 한계
‘매직’ 사건은 기업이 약관을 통해 설정한 제한이 법적으로 어디까지 강제력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도 촉발합니다. 서비스 제공자가 약관을 통해 자동화 프로그램의 사용을 금지한다고 해서, 그러한 프로그램의 개발과 사용이 자동적으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약관 위반은 기본적으로 계약 관계의 문제로, 서비스 이용 제한이나 손해배상 청구와 같은 민사적 구제수단을 통해 해결되어야 합니다. 형사처벌은 행위의 가벌성이 법률에 명확히 규정되어 있고, 해당 행위가 사회적으로 중대한 법익을 침해하는 경우에 한하여 적용되어야 합니다.
8. 시사점 및 결론
‘매직’ 프로그램 사건에 대한 무죄 판결은 자동화 애플리케이션의 법적 지위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 형사처벌과 민사책임의 구분: 약관 위반이나 서비스 정책에 반하는 자동화 프로그램의 개발과 사용은 민사적 분쟁의 영역이며, 형사처벌을 위해서는 명확한 법익 침해가 있어야 합니다.
- ‘장애’의 엄격한 해석: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죄에서 ‘장애’는 정보처리장치가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하며, 단순히 운영자의 의도와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는 것만으로는 ‘장애’가 발생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 자동화와 혁신의 균형: 디지털 환경에서 자동화는 혁신과 효율성 증진의 핵심 요소이며, 형사법의 지나친 개입은 이러한 혁신을 저해할 수 있습니다. 법원의 이번 판결은 디지털 혁신과 법적 규제 사이의 균형을 모색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 입증 책임의 중요성: 업무방해를 주장하는 측은 자신의 시스템이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문제된 행위가 그러한 시스템의 정상적 작동을 어떻게 방해했는지 구체적으로 입증할 필요가 있습니다.
법무법인 케이앤피는 최근 이와 같은 자동화 애플리케이션 관련 법적 분쟁에서 피고인을 성공적으로 변호한 경험이 있습니다. 특히 기술적 측면과 법률적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자동화 프로그램의 작동 방식과 정보처리 장애 발생 여부에 관한 명확한 법리적 논증을 통해 법원의 무죄 판결을 이끌어낸 바 있습니다.
이번 판결은 디지털 환경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유형의 법적 분쟁에 대한 중요한 선례로, 향후 유사한 사건의 판단 기준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자동화 프로그램 개발자와 서비스 제공자 모두 이러한 법적 기준을 이해하고, 상호 존중과 합리적 균형점을 찾아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