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금품과 뇌물죄의 구별 기준에 관한 분석
목차
1. 후원금품과 뇌물의 개념 및 구조적 유사성
1.1 후원금품과 뇌물의 정의
후원금품과 뇌물은 모두 급부와 반대급부를 전제로 하는 거래관계에서 발생하는 금품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집니다. 후원금품은 후원자가 피후원자에게 특정한 반대급부를 기대하며 제공하는 금전이나 물품을 의미하며, 뇌물은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대가로서의 부정한 이익을 말합니다.
후원금품 뇌물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핵심은 공무원의 직무집행 공정성, 사회의 신뢰, 공직의 불가매수성이라는 뇌물죄의 보호법익이 침해되는지에 있습니다. 특히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기업과 후원계약을 체결하고 후원금품을 수수하는 경우, 이러한 행위가 형법상 뇌물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중요한 법적 쟁점이 됩니다.
1.2 구조적 유사성의 내용
후원금품과 뇌물의 구조적 유사성은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나타납니다. 첫째, 급부와 반대급부의 관계입니다. 후원 관계에서는 후원자가 피후원자에게 금품을 제공하고, 피후원자는 이에 대한 반대급부(광고효과, 명칭 사용 등)를 제공합니다. 뇌물 범죄에서도 뇌물 제공자가 공무원에게 이익을 제공하고, 공무원은 이에 대한 대가로 특정한 직무행위를 수행하는 구조를 가집니다.
둘째, 대가적 관계의 존재입니다. 후원은 후원계약에 기반하여 이행되며, 뇌물은 직무행위와 부정한 이익 사이에 급부와 반대급부라는 대가적 관계에 기초합니다. 이러한 대가적 관계는 양자 모두에서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합니다.
셋째, 경제적 가치의 이전입니다. 후원금품과 뇌물 모두 일정한 경제적 가치를 가진 이익이 한 당사자로부터 다른 당사자에게 이전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1.3 실무상 구별의 어려움
실무에서 후원금품과 뇌물을 구별하기 어려운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외형적 유사성으로 인해 단순히 금품의 제공과 반대급부만으로는 양자를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둘째, 당사자들의 진정한 의사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후원계약의 형식을 취했더라도 실질적으로는 뇌물 수수를 위한 가장행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반대급부의 적정성 판단이 어렵습니다. 후원자가 제공하는 급부에 비해 피후원자가 제공하는 반대급부가 현저히 부족한 경우, 이를 정당한 후원관계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복잡합니다.
1.4 법적 쟁점의 발생 배경
오늘날 문화, 예술, 체육, 사회복지 활동은 후원을 통한 지원 없이는 사실상 실현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민간의 행사뿐만 아니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행사도 종종 기업의 재정지원에 의지하는 것이 현실이며,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한정된 재정여건을 타개하고 지역 숙원사업이나 일자리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민간의 재정지원이나 기업유치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필요성과 형법상 뇌물죄 규정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관계가 후원금품 뇌물 여부에 관한 법적 쟁점의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2. 후원과 후원금품의 법적 의미
2.1 후원의 개념과 특징
후원을 정확하게 개념화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입니다. 후원이라는 용어는 기부, 협찬, 찬조, 지원, 진흥, 자금조달 등의 용어와 뒤섞여 사용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부금품의 수수가 기부금품법에 의하여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므로, 기부와 비슷한 후원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보다는 광고계약과 같은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후원의 영어 명칭은 ‘Sponsoring’으로, 1970년대 경영학에서 마케팅의 새로운 유형을 설명하기 위하여 등장했습니다. 초기에는 기업이 스포츠나 예술 분야에서 개인이나 프로젝트를 지원하면서 그 반대급부로 홍보나 광고를 기대한 데서 나왔습니다.
2.2 기부와 후원의 차이점
기부와 후원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반대급부의 존재 여부입니다. 기부는 일방적인 금품 제공을 본질로 하여 반대급부를 전제로 하지 않는 반면, 후원은 후원자와 피후원자 간의 급부와 반대급부를 본질로 합니다. 이러한 차이점은 법적 규율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기부금품법은 반대급부 없이 취득하는 금품만을 규제 대상으로 하므로, 반대급부를 전제로 하는 후원금품은 기부금품법의 적용을 받지 않습니다. 따라서 후원금품의 경우 기부금품법상의 제한을 받지 않고 수수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법적 지위가 다릅니다.
2.3 후원계약의 법적 성질
후원계약은 민법상 쌍무계약의 성질을 가집니다. 후원자는 금품을 제공할 의무를 부담하고, 피후원자는 이에 대한 반대급부(예: 광고 효과 제공, 명칭 사용 허용 등)를 제공할 의무를 부담합니다. 이러한 쌍무계약적 성질로 인해 후원계약은 기부와는 다른 법적 취급을 받게 됩니다.
후원계약이 민법상 유효하게 성립한 경우, 당사자들은 각자의 계약상 의무를 이행할 법적 의무를 부담하며, 상대방에 대해 계약 이행을 청구할 권리를 가지게 됩니다. 이는 후원금품 뇌물 여부를 판단할 때 중요한 고려요소가 됩니다.
2.4 후원금품의 유형과 범위
형법적 관점에서 후원은 반드시 스포츠, 문화, 교회, 학문 등의 분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와 사인 간에 체결되는 급부와 반대급부를 내용으로 하는 모든 유형의 후원금품 수수를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형법상 뇌물죄는 후원금품의 유형이나 후원의 대상을 고려함이 없이 그러한 후원금품이 뇌물죄의 보호법익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후원에 포함되는 사례상황은 매우 다양하고 그 스펙트럼도 매우 넓습니다. 예를 들어, 회사 대표이사가 관할 지역의 박물관을 후원하고 그 대가로 박물관에 회사 대표 이름이 새겨진 명패를 설치하는 사례가 대표적인 후원 사례입니다. 이러한 사례는 세부적인 내용이나 조건에 따라 허용되는 금품수수 또는 가벌적 뇌물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3. 기부금품법상 후원금품 규율 현황
3.1 기부금품법의 규제 대상
현행 기부금품법은 기부금품의 모집절차 및 사용방법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성숙한 기부문화를 조성하고 건전한 기부금품 모집제도를 정착시키며, 모집된 기부금품이 적정하게 사용될 수 있게 함을 목적으로 합니다.
기부금품법은 역사적으로 1951년 제정된 기부금품모집금지법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당시에는 기부금품 모집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예외적으로만 허용하였습니다. 그 후 1996년 기부금품모집규제법으로 법명칭이 개정되었다가 2006년부터 현재와 같은 기부금품법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현재의 기부금품법은 성숙한 기부문화를 조성하고 건전한 기부금품 모집제도를 정착시키는 것을 취지로 하고 있어, 특별히 금지하지 않거나 다른 법령에서 허용하는 한 기부금품의 모집이 허용됩니다.
3.2 반대급부 유무에 따른 구분
기부금품법 제2조 제1호는 기부금품을 “환영금품·축하금품·찬조금품 등 명칭 여하에 불구하고 반대급부 없이 취득하는 금전 또는 물품”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반대급부 없이’라는 요건입니다.
따라서 후원계약에 기초한 반대급부가 있는 것을 본질로 하는 후원금품은 기부금품법에서 말하는 기부금품에 해당하지 않게 됩니다. 즉, 반대급부를 전제로 하는 후원금품은 처음부터 기부금품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명확합니다.
다만, 기부금품법은 법인·정당·사회단체·종친회·친목단체 등이 정관이나 규약 또는 회칙 등에 의하여 그 소속원으로부터 가입금·일시금·회비 또는 그 구성원의 공동이익을 위하여 갹출하는 금품, 사찰·교회·향교 기타 종교단체가 그 고유활동에 필요한 경비에 충당하기 위하여 신도로부터 갹출하는 금품 등은 기부금품에서 제외하고 있습니다.
3.3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의 제한
기부금품법은 1천만원 이상의 기부금품을 모집하려는 자로 하여금 행정안전부장관 또는 광역지방자치단체장에게 등록하도록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기부금품법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및 그 소속 기관·공무원과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출자·출연하여 설립된 법인·단체의 기부금품 모집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 기관은 자발적으로 기탁하는 금품이라도 법령에 다른 규정이 있는 경우 외에는 이를 접수할 수 없도록 금지하고 있습니다. 기부금품법 제4조 제1항과 제5조 제1항에 대한 위반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됩니다.
3.4 후원금품 수수의 허용 범위
기부금품법이 반대급부 없이 취득하는 금품만을 규제하므로, 우리 법질서는 반대급부가 있는 후원계약이나 후원금의 수령을 금지하지 않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기업으로부터 후원계약을 체결하고, 이 계약에 기초하여 후원금품을 수령하는 것은 기부금품법상 금지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기업으로부터 후원계약을 체결하고 후원금품을 수령하는 것을 두고 언제나 현행법 위반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후원금품의 수령자인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 후원자와 숨겨진 약정 등을 통하여 그 후원금품 중 일부를 뇌물로 숨겨서 수수하는 예도 얼마든지 상정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뇌물죄 구성요건과 대가관계의 판단기준
4.1 뇌물죄의 보호법익 변천
뇌물죄의 보호법익에 관하여 학설에서는 직무행위의 불가매수성이라는 견해와 직무행위의 불가매수성과 이에 대한 일반의 신뢰라는 견해가 대립하고 있습니다. 우리 판례는 이에 대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종래 판례는 뇌물죄의 보호법익을 직무행위의 불가매수성에 있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1965. 5. 31. 선고 64도723 판결). 그러나 이후 판례는 “뇌물죄는 직무집행의 공정과 이에 대한 사회의 신뢰에 기하여 직무행위의 불가매수성을 그 직접의 보호법익으로 하고 있다”고 판시하여 기존의 입장을 수정하였습니다(대법원 1984. 8. 14. 선고 84도1139 판결; 대법원 1996. 1. 23. 선고 94도3022 판결; 대법원 2001. 10. 12. 선고 2001도3579 판결; 대법원 2003. 6. 13. 선고 2003도1060 판결; 대법원 2013. 11. 28. 선고 2013도9003 판결).
이러한 변화는 뇌물죄의 적용 범위와 해석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직무행위의 불가매수성만을 보호법익으로 하면 뇌물이 직무와 직선적인 연결고리로 엮여있는 경우에만 뇌물죄의 성립을 인정하는 한계가 있으므로, 수정된 판례의 태도와 같이 넓은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4.2 단순수뢰죄의 구성요건
단순수뢰죄(형법 제129조 제1항)는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그 직무에 관하여 뇌물을 수수, 요구 또는 약속한 때 성립합니다. 여기서 핵심적인 구성요건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주체는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어야 합니다. 공무원의 개념은 형법 제129조에서 별도로 정의하지 않고 있으므로, 일반적으로 형법총칙상 공무원의 개념에 따라 해석됩니다.
둘째, 직무관련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 직무에 관하여”라는 요건은 뇌물과 공무원의 직무 사이에 관련성이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는 뇌물죄의 핵심 요소인 대가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셋째, 뇌물을 수수, 요구 또는 약속해야 합니다. 여기서 뇌물은 공무원의 직무에 대한 부정한 이익을 의미하며, 반드시 금전적 가치를 지닐 필요는 없고 비재산적 이익 및 일체의 유형·무형적 이익을 포함합니다.
4.3 제3자뇌물제공죄의 구성요건
제3자뇌물제공죄(형법 제130조)는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그 직무에 관하여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3자에게 뇌물을 공여하게 하거나 공여를 요구 또는 약속한 때 성립합니다. 이 죄의 구성요건요소 중 특히 주목할 점은 ‘부정한 청탁’입니다.
대법원은 “‘부정한 청탁’이란 청탁이 위법·부당한 직무집행을 내용으로 하는 경우는 물론, 청탁의 대상이 된 직무집행 그 자체는 위법·부당하지 않더라도 직무집행을 어떤 대가관계와 연결시켜 직무집행에 관한 대가의 교부를 내용으로 하는 경우도 포함한다”고 판시하여 ‘부정한 청탁’을 매우 넓게 해석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19. 8. 29. 선고 2018도13792 전원합의체 판결).
이러한 해석은 직무집행 자체가 위법하지 않더라도 직무집행을 대가관계와 연결시키는 것만으로도 부정한 청탁에 해당할 수 있음을 의미하여, 후원금품과 관련된 사안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4.4 대가관계의 인정 기준
단순수뢰죄든 제3자뇌물제공죄든 핵심적인 요소는 ‘뇌물’이며, 이는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대가로서의 부정한 이익입니다. 뇌물은 직무에 관한 부정한 이익이어야 하므로, 공무원의 직무행위와 부정한 이익 사이에 급부와 반대급부라는 대가적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대가관계의 인정에 있어서는 시간적 선후관계가 반드시 요구되지는 않습니다. 즉, 뇌물을 먼저 받고 나중에 직무를 수행하거나, 직무를 먼저 수행하고 나중에 뇌물을 받는 경우 모두 대가관계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또한 대가관계는 명시적일 필요가 없으며, 묵시적인 합의에 의해서도 인정될 수 있습니다. 당사자들이 명시적으로 대가관계에 대해 합의하지 않았더라도,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대가관계가 인정되면 뇌물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4.5 포괄적 대가관계 법리
판례는 포괄적 대가관계를 인정하여, 개개의 직무행위가 특정될 필요 없이 공무원의 직무와 수수한 이익이 전체적으로 대가관계에 있으면 뇌물수수죄가 성립한다고 보고 있습니다(대법원 1997. 12. 26. 선고 97도2609 판결).
이는 뇌물죄의 적용 범위를 넓히는 효과를 가져왔으며, 후원금품과 관련된 사안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특정한 직무행위와 후원금품 사이에 일대일 대응관계가 없더라도, 전체적으로 공무원의 직무와 후원금품 사이에 대가관계가 인정되면 뇌물죄가 성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무원의 이익 수수가 언제나 뇌물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이익과 직무행위 간에 대가관계가 인정되더라도 일정한 기준에 해당하면 대가관계가 부정될 수 있습니다. 이는 뇌물죄의 보호법익이 침해되지 않는 일정한 사유에 해당하면 뇌물죄의 대가관계가 부정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5. 후원금품과 뇌물죄의 이익 개념
5.1 뇌물죄 이익의 개념과 범위
뇌물은 직무에 대한 부당한 이익을 말합니다. 뇌물의 내용을 구성하는 이익은 직무행위에 영향을 미칠 만큼 충분한 가치가 있는 한 반드시 금전적 가치를 지녀야 할 필요는 없으며, 비재산적 이익 및 일체의 유형·무형적 이익을 포함합니다.
판례는 뇌물수수죄나 뇌물공여죄에 있어서의 뇌물이란 “금전, 물품 기타의 재산적 이익 등 사람의 수요, 욕망을 충족시키기에 족한 유형, 무형의 일체의 이익”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조합아파트 가입권에 붙은 소위 프리미엄도 뇌물에 해당한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대법원 1992. 12. 22. 선고 92도1762 판결).
5.2 재산적 이익과 비재산적 이익
판례의 취지에 따르면 저리의 융자와 같은 금융 특혜, 이성 간의 정교, 싼 가격의 부동산 분양, 고액의 축의금이나 조의금, 골프장이나 헬스클럽의 회원권 제공, 투기적 사업에 참여할 기회 등도 뇌물죄의 이익에 해당하게 됩니다.
특히 투기적 사업 참여 기회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공무원이 뇌물로 투기적 사업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받은 경우, 뇌물수수죄의 기수 시기는 투기적 사업에 참여하는 행위가 종료된 때로 보아야 하며, 그 행위가 종료된 후 경제사정의 변동 등으로 인하여 당초의 예상과는 달리 그 사업 참여로 아무런 이득을 얻지 못한 경우라도 뇌물수수죄의 성립에는 영향이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대법원 2002. 11. 26. 선고 2002도3539 판결).
이는 뇌물죄에서 말하는 이익이 실제 경제적 이득의 실현 여부와 관계없이 기회의 제공 자체만으로도 인정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5.3 공익목적 사용과 뇌물성
뇌물은 불법한 보수나 부정한 이익이면 족하므로, 공무원이 자선적 동기에서 직무행위와 대가관계 있는 재산적 이익을 보육원이나 사회공공기관에 기부하도록 한 경우에도 뇌물이 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금품을 수수한 공무원이 이를 부하직원들을 위하여 소비하였을 뿐 자신의 사리를 취한 바 없다 하더라도 그 뇌물성이 부인되지 않는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대법원 1996. 6. 14. 선고 96도865 판결).
구체적인 사례로 공정거래위원장이 이동통신회사가 속한 그룹의 구조조정본부장으로부터 당해 이동통신회사의 기업결합심사에 대하여 선처를 부탁받으면서 특정 사찰에의 시주를 요청하여 시주금을 제공케 한 경우, 그 시주금은 부정한 이익으로서 뇌물이 된다고 판시했습니다(대법원 2006. 6. 15. 선고 2004도3424 판결).
5.4 권한남용 여부의 판단
위의 사례에서 중요한 것은 공정거래위원장의 권한남용이 분명하다는 점입니다. 시주금을 제공할 의무가 없는 사인에 대한 공정거래위원장의 권한남용이 있었기 때문에 뇌물성이 인정된 것입니다.
그러나 공무원의 권한남용이 없이 해당 이익이 공익목적으로 사용된 경우에는 쉽게 뇌물로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명예욕이나 허영심을 만족시키는 비재산적 이익은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워 뇌물죄의 이익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이러한 구분은 후원금품의 뇌물 여부를 판단할 때도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공무원이 정당한 권한 범위 내에서 공익목적으로 후원금품을 수수한 경우와 권한을 남용하여 사적 이익을 추구한 경우를 구별하여 판단해야 합니다.
6. 민법상 유효한 후원계약의 법적 효력
6.1 후원계약의 유효성 판단
후원계약과 그에 기초한 후원금품 수수 및 반대급부 이행은 공무원의 후원금품에 대한 법적인 권리와 밀접하게 관련됩니다. 외형적으로 급부와 반대급부 관계에 있는 후원계약 및 그 이행이 민법상 유효한 계약에 기한 것인 경우, 그러한 급부나 반대급부를 뇌물로 볼 수 있는지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민법상 계약의 유효성은 의사표시의 합치, 당사자의 행위능력, 계약 내용의 적법성 등을 기준으로 판단됩니다. 후원계약의 경우에도 이러한 일반적인 계약 유효성 판단 기준이 적용됩니다.
특히 공무원이나 공무소가 체결하는 후원계약의 경우, 관련 법령에 따른 절차적 요건이 준수되었는지, 계약 체결 권한이 있는 자가 계약을 체결했는지, 계약 내용이 법령에 위반되지 않는지 등이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됩니다.
6.2 법적 권리와 청구권의 존재
개인이나 기업이 공무원에게 제공한 금품이 공무원이 이행해야 하는 의무와 대가관계에 있고 이러한 금품과 의무가 계약상 합의된 내용인 경우, 그러한 금품은 뇌물죄 구성요건에 합치되는 이익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공무원이 정당한 권리나 청구권을 보유하고 있다면, 이러한 금품을 뇌물의 내용이 되는 이익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결국 쌍무계약을 통해 공무원이 수수한 금품을 뇌물로 볼 수 있는지는 사인과 공무원 간에 체결된 계약이 적법한지의 여부에 달려있다고 할 것입니다.
이는 후원금품의 뇌물성을 부정하는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민법상 유효한 후원계약에 기초하여 공무원이나 공무소가 후원금품에 대해 정당한 법적 권리를 가지는 경우, 이는 부정한 이익으로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6.3 가장행위와 진정한 의사
후원계약 당사자 간의 진정한 의사가 쌍무계약 관계에 있지 않고, 다른 부정한 행위를 덮기 위한 가장행위에 불과한 경우에는 공무원에게 법적으로 승인된 권리의 근거가 결여되어 있으므로 뇌물죄가 전제하는 이익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 점에서 후원계약의 실제 내용과 이행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계약서를 해석하고 조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순히 후원계약서가 작성되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계약의 실질적 내용과 당사자들의 진정한 의사가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가장행위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는 계약 체결 경위, 급부와 반대급부의 균형성, 계약 이행 실태, 당사자들의 인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6.4 계약 해석의 실무적 기준
후원계약의 해석에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실무적 기준들이 중요합니다. 첫째, 계약서의 문언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계약서에 명시된 급부와 반대급부의 내용, 이행 방법, 이행 시기 등을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둘째, 계약 체결 및 이행의 실제 과정을 살펴봐야 합니다. 계약서상의 내용과 실제 이행 내용이 일치하는지, 반대급부가 실제로 제공되었는지 등을 확인해야 합니다.
셋째, 당사자들의 주관적 인식을 고려해야 합니다. 당사자들이 진정으로 쌍무계약 관계에 있다고 인식했는지, 아니면 단순히 뇌물 수수를 은폐하기 위한 방편으로 계약서를 작성했는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7. 급부와 반대급부의 적정성 판단
7.1 적정성 요구의 필요성 논란
공무원과 기업이 후원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도 급부와 반대급부가 적정한 관계에 있어야만 뇌물죄의 이익을 부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나뉩니다.
일부 학설은 사인이 제공하는 급부와 공무원의 반대급부가 서로 적정한 관계에 있어야 뇌물죄의 이익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이 경우 적정성은 경제적 사정, 공무원의 지위, 경험, 급부의 범위와 기간, 시장 가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봅니다.
반면 다른 견해는 급부와 반대급부의 기초가 쌍무계약에 있으므로 수량적 적정 관계는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후원계약 관련 광고의 경우 적정성 판단이 어렵고, 사전에는 적정해 보였으나 추후 부적정하게 밝혀지면 뇌물죄 성립 가능성을 열어주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7.2 경제적 효율성의 원칙
해당 후원계약의 내용이 민법상 유효한 범위 내에 있는 것이면 급부와 반대급부 간의 적정성 내지 상당성은 중요하지 않다고 보아야 합니다. 민사소송에서 심한 불균형을 이유로 무효를 주장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정확한 적정성 심사는 타당하지 않습니다.
공무원 또는 공무소는 최소 투입으로 최대 효용을 추구해야 하므로, 급부와 반대급부 간의 엄격한 적정성을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공무의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급부와 반대급부가 완전히 균형을 이루지 않더라도, 그것이 공익에 기여하고 효율적인 자원 배분에 도움이 된다면 정당하다고 봐야 합니다.
7.3 적정성 판단의 어려움
후원계약에서 급부와 반대급부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것은 실제로 매우 어려운 작업입니다. 첫째, 광고 효과나 홍보 효과와 같은 무형의 반대급부의 경제적 가치를 정확히 산정하기 어렵습니다.
둘째, 시장에서 유사한 거래가 활발하지 않은 경우 비교 기준을 찾기 어렵습니다. 특히 공공기관과 민간기업 간의 후원계약은 일반적인 상거래와는 다른 특성을 가지므로, 단순히 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적정성을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셋째, 적정성 판단 시점의 문제가 있습니다. 계약 체결 당시에는 적정해 보였으나 사후에 경제 상황 변화 등으로 인해 부적정하게 된 경우, 이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7.4 실무상 적용 기준
실무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준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적정성을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첫째, 민법상 현저한 불균형을 이유로 계약의 효력이 부정될 정도의 심각한 불균형이 있는지를 검토합니다.
둘째, 후원계약 체결 당시의 객관적 상황과 당사자들의 인식을 고려합니다. 계약 체결 당시에 합리적인 당사자라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의 거래인지를 판단합니다.
셋째, 공익성과 투명성을 고려합니다. 후원계약이 공익에 기여하고 투명하게 공개된 경우에는 다소의 불균형이 있더라도 적정성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넷째, 당사자들의 협상력과 정보 접근 능력을 고려합니다. 공무원이나 공무소가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자유롭게 협상한 결과라면 그 결과를 존중해야 합니다.
8. 후원금품 뇌물 여부 판단의 실무적 기준
8.1 주요 판단 기준의 정립
후원자(기업)와 피후원자(공무원, 공무소) 간의 계약이 민법적으로 유효한 경우, 피후원자인 공무원은 후원금품에 대한 법적인 권리를 가지게 되므로, 이 경우의 후원금품은 뇌물죄에서 말하는 이익이 될 수 없습니다.
후원금품 뇌물 구별의 핵심 기준은 뇌물죄의 보호법익인 공무원의 직무집행의 공정과 사회의 신뢰 및 직무행위의 불가매수성이 침해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사례에서는 뇌물죄의 대가관계를 부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해당하는 구체적 기준은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가 후원금품이나 자금 등을 조달할 때 관련 법령과 행정절차를 준수했는지 여부입니다.
8.2 투명성과 절차적 적법성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가 관련 법령과 절차를 준수한 행정행위를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는 것은 가치 모순입니다. 따라서 행정법상 위법하지 않은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의 행정행위에 대해서는 형법의 보충성 원칙 등에 비추어볼 때 형법이 개입하지 않는 것이 타당합니다.
투명성의 확보는 후원금품의 뇌물성을 부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후원계약의 체결 과정과 내용이 공개되고, 관련 이해관계자들이 이를 알 수 있는 상태라면, 뇌물죄의 보호법익인 공직에 대한 사회의 신뢰가 침해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절차적 적법성도 중요한 판단 기준입니다. 관련 법령에서 정한 절차를 준수하여 후원계약을 체결하고 이행했다면, 이는 뇌물죄의 구성요건 해당성을 부정하는 강력한 근거가 됩니다.
8.3 범죄적 동기의 존재 여부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와 기업 간에 외형적으로 정상적인 후원계약이 체결되었더라도, 후원이나 자금 조달을 담당하는 공무원에게 후원과 무관한 범죄적 동기가 숨어있는 경우에는 뇌물성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범죄적 동기의 존재 여부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합니다. 첫째, 후원계약 체결 과정에서 공무원이 특별한 편의를 제공했는지 여부입니다. 둘째, 후원계약과는 별도로 공무원이 개인적 이익을 취했는지 여부입니다. 셋째, 후원계약 체결 전후로 공무원의 직무행위에 변화가 있었는지 여부입니다.
8.4 구체적 사례와 판례 분석
실제 사례로 국립대학교 교수 자문료 수수 사건이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국립대학교 교수가 가습기살균제 관련 연구를 수행하면서 별도로 자문료를 받은 것이 뇌물에 해당하는지가 문제되었습니다.
서울고등법원은 자문료가 뇌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17. 4. 28. 선고 2016노3175 판결). 그 근거로는 첫째, 자문계약이 연구계약과 별개인 점, 둘째, 실제 자문이 이루어진 점, 셋째, 자문료가 과도하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 넷째, 회사가 연구 관련 대가를 연구비로 지급할 이유가 있는 점, 다섯째, 교수가 자문료를 신고하고 세금을 납부한 점 등을 들었습니다.
대법원도 원심의 판단을 정당하다고 보아 확정했습니다(대법원 2021. 4. 29. 선고 2017도7138 판결). 이 사례는 후원금품과 유사한 성격의 금품이 뇌물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는 경우를 보여주는 중요한 판례입니다.
만약 후원 기업이 후원금품을 투명하지 않게 공무원 내지 공무소에 제공했고, 일반 시민이나 관련 사람들이 후원계약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이는 뇌물죄의 이익을 부정하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사안은 뇌물죄의 관점에서 상세하게 규명해야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후원금품의 뇌물 여부는 ①후원계약의 민법상 유효성, ②절차적 적법성과 투명성, ③공무원의 법적 권리 존재, ④범죄적 동기의 부존재, ⑤공익목적의 사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합니다.
법무법인 케이앤피는 최근 국회의원이 기업인으로부터 기부금을 받은 사례에서 후원금품과 뇌물죄의 구별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여 무죄 판결을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특히 후원계약의 적법성과 투명성, 반대급부의 존재, 절차적 적법성 등을 종합적으로 입증하여 뇌물죄의 구성요건 해당성을 부정하는 데 성공한 실무 경험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유사한 사안에서 효과적인 법적 대응 방안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